전체 글1 김좌진 장군 1911년 동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하여 자금조달자 돈의동에 사는 족질 김종근을 찾아간 것이 원인이 되어, 2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복역 중 김구와도 조우한다. 1913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김좌진은 “사나이가 실수하면 용납하기 어렵고 지사가 살려고 하면 다시 때를 기다려야 한다.”라는 시를 지었다. 1917년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박상진 등과 활동하다 1918년 만주 길림으로 망명하면서 “칼 머리 바람에 센데 관산 달은 밝구나 칼끝에 서릿발 차가워 고국이 그립도다 삼천리 무궁화 동산에 왜적이 웬 말이냐 진정 내가 님의조국을 찾고야 말것이다.”라는 시를 지었다. 대한정의단에 합류한 군사부문 책임자가 되었고 동 단체를 군정부로 개편한 후 사령관으로 추천되었다. 한편, 191.. 2025. 5.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