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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by 반려동물 건강상식 2025. 5. 8.

1911년 동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하여 자금조달자 돈의동에 사는 족질 김종근을 찾아간 것이 원인이 되어, 2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복역 중 김구와도 조우한다. 1913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김좌진은 “사나이가 실수하면 용납하기 어렵고 지사가 살려고 하면 다시 때를 기다려야 한다.”라는 시를 지었다. 1917년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박상진 등과 활동하다 1918년 만주 길림으로 망명하면서 “칼 머리 바람에 센데 관산 달은 밝구나 칼끝에 서릿발 차가워 고국이 그립도다 삼천리 무궁화 동산에 왜적이 웬 말이냐 진정 내가 님의조국을 찾고야 말것이다.”라는 시를 지었다. 대한정의단에 합류한 군사부문 책임자가 되었고 동 단체를 군정부로 개편한 후 사령관으로 추천되었다. 한편, 1918년 박상진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박상진을 구하기 위해 파옥계획을 세웠으나 실현은 하지 못했다.[6] 1918년 길림에서 무오 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 1919년 북로군정서 사단장과 사관연성소 소장을 겸임했다. 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김좌진은 1921년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했다. 1921년 우수리강을 넘어 이만까지 갔다가, 다시 북만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유시참변은 겪지 않았다.